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劉氏歷史 硏究會

典客司日記 2 > 典客司日記 第 13

考證日記 典客司日記 2 > 典客司日記 第 13 > 英祖 35年 己卯 [1759] > 三月 > 初四日 >

송화강 [유경상]

번역문

典客司日記 2 > 典客司日記 第 13 > 英祖 35年 己卯 [1759] > 三月 > 初四日 >

기사제목: 華人張師漢等의 親外孫·外外孫免役을 請하는 上言은 勿施할 것. 영조35년 기묘(己卯 1759년) 03월 04일 있었던 일

[華人張師漢劉禹昌等上言 勿施] 一, 慶尙道軍威居華人張師漢等駕前上言內, 臣矣身等先祖海潢, 以天朝請兵將吳惟忠左都把摠, 大樹功業, 而天兵凱旋之日, 臣矣身先祖叚, 累經征伐, 身被累槍, 難以同歸, 且喜東俗之淳厖, 卜居軍威, 其子孫混歸向化, 同齒收布矣. 特恩聖敎, 以華

人只以紙束, 隨納禮曹, 而上年備局行會中, 華人親外孫其仍令免役故, 自本官, 不分親外孫外外孫, 並定軍是白乎所, 伏願

聖明, 親外孫直派叚, 毋論世代遠近, 仍置華系事, 伏蒙天恩事及安陰居幼學劉禹昌, 如前上言內, 臣矣身父島賢, 以華人劉

荃之後裔, 年年納布於禮曹矣, 今不入於備局成冊中, 伏乞特令備局, 明査處之事據, 曹申目云云事啓下是白有亦, 觀此上言, 則其矣等昭籲, 不過呈備局呈本官之事, 而乃敢上煩天聽, 猥越莫甚, 並只勿施何如,乾隆二十四年三月初四日,右承旨臣南泰著次知逹。依準。

해석문

典客司日記 2 > 典客司日記 第 13 > 英祖 35年 己卯 [1759] > 三月 > 初四日 >

 

기사제목:중국화교 장사한등의 친외손,외가의 외손들의 부역,세금면제를 청원하는 진언은 금할 것.영조 35년 1759년 기묘 3월 4일있었던 일:경상도 군위에 살고 있는 장사한(張師漢)등이 성상의 수례 앞에서 내막을 아뢴적이 있읍니다.이로써 천자에게 청하여 오유충(吳惟忠)이 좌도가 되어 군사를 거느리고 신과 더불어 신의 선조들이 바다를 건너 왔읍니다.여러차례 대승하여 공로를 세웠고,그래서 천자의군대는 승전가를 부르게 되었읍니다.신과 신의 선조들이 여러차례 정벌에 나서면서 창에 찔린 상처가 있어서 함께 귀국하기 어렵게되었읍니다.또한 기쁜 것은 동쪽의 풍속이 순박하고 두터워서 이에 군위에서 터를 잡고 살고 있읍니다.같은 동년배들이 세금을거두어 그 자손들이 어울려 귀화를 하였읍니다.성상께서 하교하시어 특별한 은총을 받았기 이로써 화교들은 두루마리 편지로 마침내예조에 세금을 납부하였읍니다.그러나 예전에 비국의 행사에 참석하였을 때,화교들에게는 친손과 외손들까지도 부역을 면제 받게 되었읍니다.스스로 관리의 신분이 되어 친손과 외손의 외손들까지도 모두 나란히 정해진 군사로 징집하시기를 호소합니다.밝으신 성상께 엎드려 원하건데 친손과 외손들은 계파와 서출에 세대의 멀고 가까움을 논할 것도 없이 이로써 인하여 화교의 관계된일을 방치하였던 것입니다.우매한 자가 엎드려 천자의 성은을 받기에 이르러, 안음(安陰)에 살고 있는 어린 학생 유우창이 앞에서올린 말씀과도 같읍니다.신과 신의 부친 유도현은 이로써 화교인 유전(劉荃)의 후손입니다.해마다 베를 공물로 예조에 바쳤는데지금 그러한 일들이 비국의 장부책 속에는 기재되어 있지 않읍니다.엎드려 빌건데 비국에 특별히 명하시어 이러한 전거를 분명하게 밝혀 주십시요.조신목이 맣하기를 에전에 결재를 받고,또한 이것을 아뢰었다고 합니다.이것을 살피건데 올린 말씀은 곧 그와 같은 일들을 밝혀 주셨읍니다.그런데도 비국에서는 본관의 일을 품신하지 않았던 것입니다.그러니 마침내 감히 천자의 귀를 번거롭게 어지럽히고 외람되이 지나침이 심하기로 끝이 없읍니다.하물며 다만 이와 같은 일들은 베풀지 말도록 하십시요. 乾隆二十四年三月初四日,右承旨臣南泰著次知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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